내일이면 리스본을 떠난다. 오늘은 남은 하루다.
여행도 전쟁이다. 하나라도 더 봐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새벽에 눈이 떠지고 (전쟁터에서의 흥분), 기나긴 줄에 서서 뜨거운 햇살을 참으며 입장을 기다리고 (참호전), 오늘의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 정신없이 구글맵 (작전지도)을 검색하고 맛집을 찍고, 교통편을 체크하고... (정보전)
하지만 리스본만 오늘이 10일째다. 이미 유명하다는 곳은 왠만하면 다 가 보았는지라, 마치 우리 동네 관광지를 보기 위해 궂이 일찍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늦잠 자고 여유로운 아침을 즐긴다. 창밖으로 파란 하늘과 지저귀는 새들과 테라스에 나와 담배를 피는 리스본 토박이 할배를 본다.
포르투갈 여행하면서 느낀 부러움이 있다면 세가지다.
1. 지팡이 짚고 여행오신 백발 노인
2. 애기 업고 여행하는 젊은 부부
3. 임신한 몸으로 여행하는 어떤 여인
여행을 하기 위한 조건이란 없다.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 을 보면, 밑바닥 인생의 돌봄이 '드리스'가, 머리빼고 전신 마비인 백만장자 '필립'과 스위스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러 간다. 나이가 많다. 장애인이다. 애가 고3이다. 임신중이다. 모두 핑계일 뿐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럼 더더욱 남은 날을 여행을 하며 보내야 한다. 영화 '인생을 아름다워'에서 시한부 선고 받은 세연 (염정아 분)와 남편 진봉 (류승룡 분)은 세연의 첫사랑을 찾으러 여행을 떠난다. 여행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게된다. 죽기전에 더우기 추억을 쌓는 여행을 가야 한다. 훌훌 털어버리고 여행을 가야 한다. 인생 자체가 짧은 여행이자 소풍이다. 공수래 공수거라고 했다.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을 하기 위해서 여행을 해야 한다. 싯타르타도 왕궁을 벗어나 여행을 하며 득도했다. 예수도 제자들과 여행을 하면서 진리를 전파했다.
그런데 여행을 와서도 나의 쓸데없는 집착은 계속된다.
1. 해외 여행 와서 나는 왜 그만둔 직장의 주가를 검색하는 걸까? (前 직장 집착증)
2. 해외 서점에서 나는 왜 한국 책을 찾아 보는 걸까? (고국 집착증)
3. 아내는 왜 숙소에 납작복숭아 두고 온 악몽을 꾸는 걸까? (납작복숭아 집착증)
4. 나는 왜 현지 심카드를 구입 않고 해외 로밍을 했을까? 연락 올데도 없는데... (연락 집착증)
5. 우리 부부는 왜 예전 직장 동료들, 지인들과 계속 연락을 하는 걸까? (이건 집착이 아니라 네트워킹?)
우리 부부의 포르투갈에서의 집착은 '에그타르트'다. 오늘의 미션도 그 맛을 잊지 못하는 정통 에그타르트 집 '파스테이스 드 벨렝' 재 방문이다. 그 동안은 Take out만 했었는데 오늘은 줄이 그다지 길지 않은 듯해서, 안쪽의 카페에 들어가서 커피와 에그타르트를 먹는 걸 시도한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난 갯수의 에그타르트를 공장식으로 제조하는 제빵실을 지나, 상당히 넓은 카페 공간이 나온다. 빈자리가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만원이다. 웨이트리스가 주문을 받는데 마치 AI 로봇 같다. 에그타르트 여섯 개와 초코타르트 한 개, 에스프레소 커피 두 잔을 AI 女에게 주문했다. 주변 사람 구경만 해도 하루를 재밌게 보낼 수 있을 만큼 다양한 국적의 관광객들... (사람 구경만큼 재밌는게 없다.) 먹고 남은 에그타르트를 포장할 종이 케이스 달라고 했는데, 잘 못 알아들었는지 6개입 종이 포장된 에그타르트를 두줄을 또 갖고 온다. ㅠㅠ 구글번역앱으로 정정해서 종이 케이스만 다시 요청했더니 AI 女가 웃으며 다시 갖구온다. (AI가 아니란게 증명되서 기쁘다.)
다음 코스는 'MAAT 뮤지엄'. 박물관 실내는 패스하고 지붕위에서 4월 25일 다리와 예수상 그리고 거칠게 흐르는 테주강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찰칵! 햇볕은 따가웠으나 세차게 부는 강바람에 피부가 더워질 새가 없었다.
버스를 타고 Cais do Sodre역으로 돌아간다. 'Cais do Sodre역'은 우리로 치면 신도림역 정도 되겠다. 역사 지하에서 지상으로 계단을 이용해 올라가다보면 상암동 문화비축기지를 연상케하는 벽 인테리어가 나온다. 나도 오래 살았나 보다. 어떤 장소에 가면 기시감이랄까, 데자뷔랄까 이런 걸 많이 느낀다. 역 근처 타임아웃 마켓을 방문해서 식사하는 사람들과 기념품 가게를 구경한다. 화장실 앞 포스터들이 현란하고 재미있다. 맛있어 보이는 호박잼을 한통 구입하고 (이거 왜 한 통만 샀는지 왕 후회 했다. 너무 맛있음) 다시 바이샤 시아두로 향한다.
바이샤 시아두 지역에서는 'Livraria Sa Da Costa' 라는 헌책방을 구경하고, 카르무 성당을 다시 둘러 보고, 이미 한번 탄 적있는 산타 주스타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고 아우구스타 거리로 내려온다. 다음 코스는 '주제 사라마구'의 기념관과 수목장한 올리브나무를 보러 알파마 지구 남쪽으로 향한다. 주제 사라마구의 책 '눈먼자들의 도시'를 정말 재밌게 읽었고, 영화까지 본 나는 올리브나무에 감사의 묵념을 한다. 벤치 앞 땅 바닥에 쓰여진 주제사라마구가 쓴 문장을 읽는다.
MAS NÃO SUBIU PARA AS ESTRELAS, SE À TERRA PERTENCIA.
그러나 땅에만 속해있다면 별에는 다다를 수 없다.
무슨 의미일까 생각해봤다. 먹고사는데만 급급 하다보면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 현실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꿈과 이상과는 멀어진다? 불멸의 뭔가를 이루고자 한다면 세속적인 것은 포기해라? 무슨 의미일까? 갑자기 화가 '폴 고갱'의 삶을 모티브로 한 소설 '달과 6펜스'가 생각났다. 화가의 꿈을 이루기위해 멀쩡한 가족을 내팽개친 남자, '찰스 스트릭랜드'. 예술과 자유를 쟁취하고자 남편을 버린 여류화가 '나혜석'. 별에 다다르는 것이 진정 가치 있는 것이라면, 땅에 속해있는 99% 범인들의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땅거미가 질 무렵, 산타루치아 전망대 인근 식당 'Lisbon Tu e Eu'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알파마 지구로 올라갔다. 그런데 이런 아뿔싸... 푸니쿨라 종점에서 내리막을 걸어 내려 오다보니 갑자기 28번 트램 시점인 Martim Moniz역이 나타난다. 트램을 기다리는 사람 줄은 적어도 100미터 이상. 28번 트램은 30분에 한번씩 오는데 트램의 승객 수용 용량을 고려하면 뙤약볕 아래에서 1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한다는 결론이다. 포기하고 호시우 광장으로 향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4분 걸으니 바로 호시우 광장이다. 알파마 지구쪽은 1개 언덕이 아닌 2개 언덕으로 나뉘어 있고 산타루치아 전망대가 있는 언덕은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사실을 리스본을 떠나기 전날 '유레카'하며 깨달은 것이다. 나의 이 지리감 부족은 구글맵에 대한 지나친 의존 때문이라고 반성하며, 가까스로 멘붕에서 벗어나 737번 버스 타고 가다 다시 28번이나 12번 트램으로 환승한 다음 산타루치아 전망대로 가야겠다고 발걸음을 서두르는데, 아내가 서울의 바자회에서 1만원주고 구입한 소중한 모자를 잃어버렸다고 나한테 고백한다. ㅠㅠ (당시 썻던 나의 나이키 모자도 귀국후 서울서 술먹다가 잊어 먹는다... 모자의 저주 인가)
날은 덥고, 다리는 아프고, 이곳 저곳 가게에서 산 선물로 무거워진 백팩... 갑자기 모든게 짜증나면서 만사가 귀찮아 진다. 알파마지구 석식당인 Lisbon Tu e Eu에는 겨우 도착했지만 자꾸 술이 땡긴다. 바칼랴우 아 브라스와 폴뽀 샐러드 그리고 대구 튀김 시킨 후 나는 샹그리아 한 잔과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마시고서야 스트레스가 풀린다. 풀어진 마음으로 28번 트램타고 다시 아우구스타 거리에 도착하여 아내가 좋아하는 Paul 빵집에서 당보충을 위해 쇼콜라 케익을 사서 숙소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데 안 온다. 우리가 너무 시간을 잘 지키는 서울 대중교통 시스템에 길들여져 있었나? 결국 지하 메트로로 숙소에 복귀. 마지막날 여행 스트레스는 집에 남은 와인을 탈탈 비우면서 푼다. 이제 좀 지치는 거 보니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나 보다.
내일은 드디어 귀국이다. 아~ 신난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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