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낯선 침대위에 누워있는 나를 깨닫는다. 그래 맞다!! 우린 포르투에 와 있지. 스마트폰 시계는 7시 30분을 가리킨다. 머리는 맑고 컨디션은 최상이다. 리스본에서 산 크로와상, 사과 그리고 맛에 중독된 에그타르트로 아침을 먹고 9시 조금 넘어 오늘의 목적지 렐루서점으로 향한다. 포르투도 리스본에 못지 않게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우리 부부가 포르투갈을 여행지로 선정한 것은 프랑스, 이태리, 스위스에 비해 좀 한적하지 않을 까 하는 기대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무산되었다. 너무 많은 수의 관광객 때문에 도시에 대한 감흥이 다소 떨어진다는 의견을 서로 나눈다. (다음 여행은 "도시" 보다는 "자연" 컨셉으로 하기로 다짐한다.)
따스한 햇살과 도루강에서 묻어오는 맑은 공기를 한 가득 마시며, 약간 오르막의 골목길을 걷다보니 멀리 알록달록 관광객들 무리가 시야에 나타나고 서점에 가까움을 직감한다. 우리 입장 타임은 10시다. 하지만 포르투갈은 어딜가나 줄서기 경쟁임을 체득한 우리는 40분 전에 도착한 것이다. 서점 오픈시간은 9시 30분인데 9시 30분 타임 티켓바우처 줄부터가 끝도 없다. 10시 티켓줄에서는 우리가 3등이었는데, 우리 뒤로 급격하게 사람의 끈이 길어지기 시작한다. 도로에 접한 렐로서점은 크지 않아보여 과연 이 많은 사람들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
기다리는 30분을 지루하지 않게 보내기 위한 필살기. 앞 뒷 사람 말걸기 신공을 발휘한다. 바로 앞 독일 중년 부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키 큰 남편이 영어를 잘해서 수다가 된다. 그들도 포르투에 어제 도착했단다. 독일은 맥주가 유명하지 않냐고 칭찬해주니 옥토버 페스트 이야기 부터 "포르투갈 맥주는 그저 그래. 독일 맥주 꼭 마셔봐" 하며 맥부심을 표현한다. , 특히 자기는 쾰른 출신인데 쾰른 맥주도 무지 맛있다고... (쾰른은 대성당 말고 별볼일 없는거 아냐? 라고 할까 하다가 양국간 민간외교 차원에서 참는다...) 전문가용 카메라까지 목에 걸고 있길래 프로여행러인 것 같아 한국 와본적은 있냐니까, 가본적 없다고 한다. (유럽에서 한국까지 와봐야 진정한 프로여행러지!!!) "렐루서점이 해리포터에 영감을 줬다잖아. 너 해리포터는 읽어봤니?"라고 물었더니 쾰른 아저씨는 "아니 읽은적없어. 너는?" "나도 당연히 안읽었어. 영화로만 봤지" 라고 답하면서 이상한 동지애를 느낀다.
드디어 입장! 서점은 말그대로 인산인해!!! 놀랍다. 그 많은 사람들을 이 좁은 2층 서점에 다 밀어넣을 수 있다니. 돈의 힘이란... 내부가 사실 꽤 넓다. 가운데 꽈배기 계단이 포토 포인트라 인증샷 콱 박고! 도서관과 책을 좋아하는 우리 부부의 눈에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 코너,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소설가, 주제 사라마구 코너가 흥미로웠다. 또 포르투갈 도시들의 Before vs After 사진집도 재미있었는데 도심이 조금 바뀌긴 했으나, 서울이나 부산정도의 상전벽해는 아니었다. 갑자기 아내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혹시 한국 책도 있을까? 저기 직원에게 한번 있나 물어보자!" "와우 좋은 생각!"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 인파속에 바쁜 와중에도 찾아준다. 놀랍게도 토지나 태백산맥이 아닌 펭귄북스의 "한국 단편 소설 집 (이상의 날개, 황순원의 '너와 나만의 시간', 이문열, 김유정 등의 근/현대 소설들)" 번역 본 이었다. 이 책을 누가 사갈까 싶기도 한데 어쨋든 조지 오웰의 1984, 세익스피어 비극전집 그리고 최근 베스트 셀러로 등극한 미쉘오바마 책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었다. 과연 서점 내부는 중세 느낌 물씬 나고 앤틱하다. 해리포터는 영화로만 보긴 했으나 영화속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재미있는 사실! 서점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웃통벗고 망치들고 있는 사람 옆의 글 'Decus in Labore'의 뜻을 직원에게 물으니 '노동의 존엄성'이란다. 서점과 노동의 존엄성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건지? 서점 직원들을 계몽하기 위한 것인지? 혹은 과거 서점 주인이 칼 마르크스를 신봉했는지? 아무튼 놀러온 여행객을을 움찔하게 하는 글귀다.
서점을 다보고 나온 후 입구 앞에 늘어선 긴 인파를 보니 이상하게 흐뭇하다. 다음 코스인 카르무 수도원은 외벽의 아줄레주가 인상적이다. 그 근처의 클레리우스 성당의 경우 유료인 Tower는 패스하고 예배당만 구경하기로 타협했다. 예배당 안에는 예수를 좀 더 처절하게 사실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인상깊었다.
이제 점심을 먹기위해 미리 점찍어둔 식당 '볼타리아'로 향한다. 이제 맛집은 '오픈전 줄서기'로 공략키로 했다. 12시 오픈인데 40분 전에 미리 도착해서 1등으로 기다린다. 한국인들에게도 알려진 맛집이라 그런지, 우리 바로 뒤에도, 한국인 아주머니와 딸 사위 세명이 섰다. 아주머니는 놀랍게도 연세가 예순여덟이시다. 와우! 적지 않은 나이에 따님 부부랑 렌트카로 여행을 다니시는데, 리스본, 신트라 뿐 아니라, 브라가, 오비두스, 아베이루 등등을 샅샅히 둘러보셨단다. 우리부부도 저분 처럼 15년쯤 후에도 여전히 해외여행이 가능할까? 갑자기 서로의 대화가 "우리 돌로미티도 갔었는데 너무 좋더라구요~" "스위스도 환상적이던데요...." 라며 점점 여행 배틀로 흐를 조짐이 보일 찰나, 다행히 12시가 되어 입장하라고 직원이 소리친다.
'볼타리아'에서 우리가 정한 메뉴는 문어구이, 프란세지냐, 돼지 뺨 요리 (w/밥) 이다. 프란세지냐는 사전 공부한데로 '칼로리 폭탄', 돼지 뺨 요리는 우리로 치면 '장조림' 맛이다. "씬살!!! (싱겁게 해주세용!!!)" 이란 요구가 이번엔 안통했다. 결국 공기밥 추가 주문으로 염도를 조절해 먹었고, 같이 주문한 그린 와인도 훌륭했다. 포르투의 첫 외식이니 만큼 사치를 부려, 디저트로 초콜릿 무스에 포트와인까지... 가격은 허걱 59유로 (한국돈 80,000원!!!!). 하지만 포만감에 행복했고 기분은 카르페디엠이다. 오늘은 사치했으니 내일부터 허리띠 졸라매면 되지 않그래? 하며 서로 자위했다.
다음 일정은 트램을 타고 도루강 하구언 구경이다. 1번 트램 정류장을 헤매다 겨우 발견 하고 승차하니 1인당 5유로 (숙소 리셉션 정보는 3.5유로였는데 아무래도 업데이트가 안된 듯)를 달라고 한다. 리스본 28번 트램과 거의 같은 수준의 골동품 전차다. 종점에 도착해 보니 바닷가에 넓고 울창한 가든이 나타났다. (Jardim do Passeio Alegre) 그늘 벤치에서 싸간 사과를 먹고나니 식수 부족이 우려된다. 구글맵으로 발견한 근처 식료품점에 생수사러 들어갔더니, 아내가 그토록 찾았던 납작복숭아가 눈에 띈다. 평소 못먹는 산딸기도 있어 모두 들고 계산하러 카운터로 간다. 아내가 "산딸기 씻어 먹어야 되? (농약 괜찮아?)" 라고 물어봐 달랜다. 구글번역기로 젊고 착해보이는 여직원한테 들이댔더니, "씻는게 좋은데......." 하며 한참 고민하더니 갑자기 "내가 씻어서 갖다 줄게 " 하고 납작 복숭아와 산딸기를 들고 총총히 사라진다. 와우, 대도시 포르투의 조금만 외곽으로 나왔는데 이렇게 인심이 따뜻해지는가? 어제 저녁먹은 식당에서 당한 불친절로 다운되었던 포르투의 이미
지가 단박에 업그레이드 된다. 정원의 시원한 나무 그늘에서 맛난 과일을 먹고, 식수를 보충하니 기분 업. 다시 공원을 찬찬히 걸으며 둘러보니 미니 골프장도 있고 상당히 아기자기 하다. 포르투 시내에서 수많은 여행객에 치여서 그런지 인적이 드물고, 한적하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기 그지 없는 공원이 오히려 힐링되고 좋다.
다시 이층버스인 500번을 타고 우측 도루강 뷰 즐기며 상벤투로 돌아온다. 아내가 찍어둔 티셔츠 두벌 사고, 점원이 알려준 근처 식료품 점에서 우리의 최애 오렌지 착즙 쥬스 1리터와 생수를 구입해서 숙소에 갖다 놓고 좀 쉰다. 충전후 다시 나와 포르투에서 유명한 '볼량 시장'을 들른다. 깔끔하고 저렴한 전통시장이다. 유난히 잘 먹은 하루라 별로 배가 안고파, 시장에서 게살타파스 1개와 '그린 와인' (한잔에 2유로)을 마신걸 저녁으로 친다. 그리고 신선한 체리와 납작 복숭아를 약 11유로에 구입한 후, 시장 입구 맞은편 '볼량 빵집'에서 플레인 빵 + 견과류 케익을 사다가 숙소에서 푸짐하게 디저트 겸 저녁 간식으로 먹는다.
보통 여행시 저녁먹은 후 술집을 전전하지 않고 바로 귀가하고, 숙소에 일단 들어오면 다시 밖에 안나가는 것이, 모범생 스타일의 우리 부부 불문율이었는데, 포르투에서는 샤워 전에 야경을 잠깐 구경하기로 의기투합한다. 도루강 북쪽의 히베이라 지구는 엄청난 관광객 들이 노천 바에서 맥주, 와인, 샹그리아를 마시고 있고, 골목 골목 마다 한참 디너 식사중인 여행객으로 가득한 레스토랑들이 노란 조명들을 밝히고 있다. 동루이 1세 다리는 포르투의 랜드마크이다. 오늘은 다리를 건너지 않고 석양을 바라보면서 언덕의 가파른 계단을 오른다. 동루이 다리 상단 쪽은 고소 공포를 느낄 정도로 아찔한 높이다. 저 아래 흰색 범선에 조명이 켜지고 포르투는 밤의 축제를 펼치기 시작한다.
이번 포르투 숙소의 가장 큰 장점은 샤워기로 부터 쏘는 강한 물살이다. (아내의 대만족) 샤워 마사지로 노곤노곤한 몸과, 도루강 투어를 통해 충전되고 힐링된 마음으로 꿈나라로 들어간다.
내일은 포르투시 교외의 마토지뉴스 지구 투어로 포르투에서의 마지막날을 장식할 예정이다.
To be Continued~~
'4. 여행하며 놀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포르투갈 여행 - 포르투에서 라구스로 (5/25일) (2) | 2023.07.11 |
---|---|
포르투갈 여행 - 포르투 근교 마토지누스 투어 (5/24일) (2) | 2023.07.10 |
포르투갈 여행 - 리스본에서 포르투로 (5/22일) (2) | 2023.07.08 |
포르투갈 여행 - 카보 다 호카 (호카곶), 카스카이스 (5/21일) (4) | 2023.07.07 |
포르투갈 여행 - 28번 트램, 아줄레주 박물관, 파두공연 (5/20일) (0) | 2023.07.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