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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영화보며 놀기

영화 "리스본 행 야간 열차" 관람 후기

by 졸바맨 2023. 5. 11.

여행 떠날 포르투갈의 수도 리스본과 관련된 유명한 소설이 하나 있다. 제목은 "리스본행 야간열차". 근데 자그마치 586 페이지짜리 준 벽돌책이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젊었을 때는 "하면 된다!!"라고 하는 70년대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마인드로 중무장하지 않았던가? 열심히 읽었다.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300 페이지 즈음에서 포기했다. 이 소설은 도서관에 빌려 읽을게 아니라 소장하고 틈틈히 읽어야 한다. 소설속에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소설이 나오는데 두고두고 음미할 보석같은 구절들이 많기 때문이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 "화차"처럼 스릴러의 요소도 있다. 하지만 포르투갈 여행이 1주일도 안 남은 시점에서 나는 여행지 정보 입수가 사실 더 급하다... 소설은 다녀와서 완독해도 된다. 

 "꿩 대신 닭이다" 라고, 나는 융통성을 발휘해서 대신 2014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를 집에서 관람했다. 시리즈 온으로 1,540원을 네이버 포인트를 지불하고 1주일 대여해서....  (주의!! 영화 스포일러 좀 있습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소개

물론 원작 소설(작가 파스칼 메르시어)의 많은 내용이 압축된 영화이다. 물론 큰 스토리 줄기는 동일하고 영화가 소설을 잘 반영했다고 평가하고 싶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야기는 스위스의 한 나이든 고문헌학자이자 교수 (그레고리우스)가 출근길에 다리에서 투신 자살하려는 한 젊은 여인을 구해 주는데, 이 묘령의 여인이 작은 책을 하나 남기고 떠나버리면서 시작된다.  그 여인은 포르투갈인이었고, 그 책은 포르투갈의 어느 의사 (아마데우 드 프라두) 가 쓴 책 "언어의 연금술사"이다. 교수는 책 내용에 점점 빠져들고, 마침내 충동적으로 야간 열차를 타고 리스본으로 향한다. 그리고 아마데우의 가족, 친구, 지인들을 추적하며 얽히고 설킨 사연을 알아내고 인생의 큰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출처: 네이버 영화소개 - 포토

소설속 프라두의 책에는 의미 심장한 구절이 많이 있다. 그 내용 하나 하나가 곱씹을 수록 삶의 진실이 우러나온다. 영화중에 프라두나 그레고리우스의 나레이션으로 나오는 구절들이다.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야 할까?
무한한 가능성이 있고, 깃털처럼 가볍고 자유로우며, 불확실함으로 버거워 하던 때,
그저 꿈 같은 소망일 뿐인가?
인생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달라질 것이다.

의사 아마데우는 철학이나 인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판사였던 아버지의 희망대로 의사가 된다. 그리고 어떤 이유 때문에 살라자르 독재 정권에 대한 저항운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나란 존재는 내 결정들의 총합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데우가 인생의 어느 선택 시점으로 돌아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우리 삶이 달라질 것이라고 했는데, 내 경우는 어떤 시나리오가 전개 됬을 지 자못 궁금하다. 

 

우리는 어떤 곳을 떠날때 우리의 일부를 남긴다. 떠나더라도 그곳에 머무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는 그곳에 돌아가야만 다시 찾을 수 있다.
어떤 곳에 갈 때 자신을 향한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그 여정의 길이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 여행에서 외로움과 직면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행동은 외로움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되지 않는가?
그게 우리가 포기하는 이유가 아닌가? 인생의 마지막에 후회하게 될 모든 것...

 

어떤 곳을 갈 때 자신을 향한 여행이 시작된다.는 구절이 와 닿는다. 내가 국내든 해외든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이다. 나를 새로운 장소나 환경에 둘 때, 그곳에서 내가 투쟁하거나 적응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내 모습이다. 때론 그 모습이 낯설기도 할 수 있다. 내 안의 다양한 페르소나는 각기 다른 환경속에서 다른 색깔을 띤다고 생각된다. 결국 인생이란 느리게 나라는 존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닐까?

결국 자아상의 문제인가? 다른사람에게 인생을 인정받기 위해 무엇을 성취하고 경험할지 결정했던 것인가?
정말 그렇다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계획대로 살지 못할 거란 두려움일 것이다. 
꿈을 이룰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 지면 갑자기 삶의 방향을 잃고 인생의 진정한 주인이 될 수 없다.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연민, 황홀한 매력이 가득한 감독.
우리가 우리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이 소설 및 영화는 포르투갈의 현대사가 배경이다. 살라자르 독재시대에 저항운동을 했던 젊은이들 이야기다. 이승만 독재, 유신독재를 4/19와 6월 항쟁으로 종식 시켰던 우리와 매우 유사한 지점들이 있다. 그들도 인간인지라, 사랑하고 질투하고, 아파하고 싸웠다. 그래서 극적이다.

 

그레고리우스는 중년의 나이까지 교수로 안정된 삶을 살아왔고, 반면에 치열하게 살다간 포르투갈 사람들, 즉 아마데우, 조지, 주앙의 삶에 매료되어 어느날 갑자기 무작정, 무대책으로 리스본행 열차에 오른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어느날 비정상 적인 행동을 한 것이다. 마치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 의 스트릭랜드 처럼...  낭만적이고 멋있지만 99% 인간들에게는 쉽지 않다. 몇 달을 계획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해외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나는 안정지향적 인간이다. 물론 아마데우의 글처럼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 이기 때문에 나는 이번 포르투갈 여행 중 여러 우연에 기뻐하기도 하고 때론 좌절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묘미이고 선물일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아주 작은 것인데 나머지는 어떡할 것인가? 그래서 여러 인간들의 삶을 경험할 수 있는 배우들이 부러운 가 보다. 팬데믹 이후 한국인들의 해외 러시가 심상찮다. 한국인들이 소유보다 경험의 가치에 더 비중을 두기 시작했다.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보고 싶어한다. 용기가 대단하다. 욕심일 수도 있다. 한국인은 다이나믹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저력이지 싶다. 

 

나도 해외 여행을 좋아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저가항공을 이용하고, 저렴한 숙소를 예약할려고 애쓴다. 하지만 꼭 해외를 나가야만 새로움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중동 출장 때 사귄 친구가 서울와서 내게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그 친구에게 광화문, 경복궁 및 한국 근대사를 설명해 주었다. 또 점심으로 한식당에서 곤드레밥을 추천했더니 새로운 맛인데 괜찮다고 했다.(참고로 그 친구는 채식주의자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외국 친구들에게 한국을 설명해주다 보니 우리의 역사를 새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내가 잘 모르는 부분이 많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된다. 새로운 발견이다. 내 주변에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좋은 사람을 발견하는 것 또한 여행이다. 여행이란 관점바꾸기 놀이라고 한다. 나의 관점과 시선을 바꿀 수 있다면 어디서든 언제든 여행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 

 

포르투갈 여행을 위해 이 소설을 읽고, 영화를 봤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후에 라도 나는 이 소설책을 구입하여 아마데우의 글을 음미하면서 여러가지 화두에 대한 내 생각을 정리하려 한다.  예를 들어 의사는 독재자의 비밀경찰이자 리스본의 도살자라 불리는 멘데즈를 살린 것이 옳았는지, 아니면 죽였어야 했는지는 철학적인 화두다. 네이버는 이 영화의 장르를 미스터리, 스릴러, 멜로/로멘스로 분류하였는데, 소설과 연결되는 부분을 고려하면 철학 소설로 분류해도 될 것 같다. 

 

아무튼 포르투갈 여행이 출발하기도 전에 나에게 소중한 선물을 안겨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