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여행 - 리스본 벨렝 지구 (5/19일)
오늘은 리스본 벨렝지구로 간다. 숙소에서 메트로를 타고 Cais do Sodre 역으로 간 다음, 거기서 지상 트램을 타고 이동하면 된다. 메트로는 Red Line 으로 한 정거장 가서, Almeda 역에서 Green Line (포르투갈어로 Verde Line)으로 갈아타야 되는데 환승역이고 출근시간대라 그런지, 2호선 신도림역 못지 않게 인파로 붐빈다. Almeda역에서 촬영 때문에 아내의 핸드폰을 내가 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인파속에 아내가 사라지는 바람에 또 다시 멘붕이 왔다. (이번 포르투갈 여행에는 유난히 멘붕이 잦다... ㅠㅠ) 다행히 재회를 했지만 아내를 국제 미아로 만들 뻔했다는 사실에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런데 리스본 메트로에는 스크린 도어가 없다. 왜 우리나라 모든 지하철에는 스크린 도어를 설치하게 되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Verde Line종점, Cais do Sodre역에서는 테주강을 따라 이동하는 제법 널널한 트램 15E에 올라, 거인처럼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4월25일 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벨렝지구로 다가간다.
리스본에서 반드시 들러야 하는 Must visit 빵집,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6개 짜리 에그 타르트 패키지 포장을 사서, 제로니무스 수도원으로 힘차게 걸어간다. 파란 물감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새파란 하늘아래, 시원한 테주강 산들 바람을 맞으며 기분 좋았던 발걸음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앞, 전세계에서 온 엄청난 인파의 관광객들 앞에 경악한다.
파스테이스 드 벨렝에서 산 똑같은 포장의 6개입 파스텔 드 나타를 제로니무스 수도원을 배경으로 온갖 애교와 깜찍한 미소로 인스타용 사진을 찍고 있는 두 젊은 처자는 예상했던 대로 한국 여인들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한국 패키지 관광객들도 눈에 띈다. 줄 지옥이라고 명명할만큼 끝도 없이 길고, 언제 입장할 수 있을지 막막한 제로니무스 수도원은 개인 관람객 보다 단체 패키지 관람객을 우선 입장시키더라. 공동체를 중시하는 좌파적 마인드인가? 사회주의적 자본주의가 대세였던 유럽이라서 개인보다 공동체를 우선시하는 것인가? 최근에 유럽은 오히려 우파가 득세하던데.... 라고 이상한 혼자만의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입장줄이 길어서 지루할 때 해결책은, 앞 뒤 여행객들과 말을 트고 수다를 떠는 것이다. 바로 뒤에 기다리는 연인들은 이스라엘에서 왔단다. 이스라엘은 4월에서 9월 까지 hot & humid 하다고 한다.. (한국 한여름 날씨와 비슷) 최근에 이스라엘 정치 외교 상황이 안 좋아서 (아마도 최근 다시 긴장이 고조되는 이스라엘 vs 팔레스타인 간의 긴장 관계 때문이 아닐까 싶음) 불안한 마음에서 탈출하고자 겸사겸사 포르투갈을 5일간 여행 왔다고 한다. 마치 징집을 피해 해외 여행을 나가는 러시아 젊은이와 유사한 케이스가 아닌가 싶었다.
수도원이든, 왕궁이든, 성이든 포르투갈 건축에서 기억할 단어는 딱 하나다. "마누엘 양식" 십자가, 혼천의, 포르투갈 문장, 꽈배기 모양 기둥을 보면 아~ "마누엘" 이러면 된다. 근데 회랑을 다 본 다음에 다시 밖으로 나와 예배당 입장 줄을 다시 서는 시스템은 좀 황당했다. 물론 리스보아카드 하나로 다 커버 되기 때문에 불만은 없지만 계속되는 줄지옥에 짜증이 났다. 예배당 안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화려한 나무 세공을 금박으로 입힌 "탈랴 도라다". 그리고 국민시인 "카몽이스"와 인도 항로를 발견한 세계사 시간에 익히 외운 "바스코 다가마"의 석관을 놓치지 않으면 된다.
자~ 이제 에너지를 보충할 점심시간. 벨렝탑 방향으로 도로가를 따라 걸으며 구글지도를 열심히 검색하다보니, 우연히 12시에 막 오픈한 O Recanto란 식당을 발견했다. 에피타이저로 대구 고로께, 메인 요리로 대왕문어다리 구이와 대구 요리를 주문했다. 아내는 점점 문어 중독이 되어 간다. 늘 문어를 주문하기 시작했다... (아내는 포르투갈 여행중 이곳의 문어가 Best 였다고 한다.) 내가 주문한 대구 요리는 좀 짜서 아쉬웠다. 여행전 그렇게 외운 표현 "씬살 (짜지 않게 해주세요)"을 깜빡한 죄다. 어쨋든 우연히 발견한 식당인데도 선량해 보이는 웨이터들과 풍미있는 로컬 요리, 깔끔하고 고풍스런 실내 인테리어가 만족스러웠다. 다만 우리가 마수걸이로 입장한 이후로 손님들이 물밀듯이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뭐 서비스라도 하나 내 놓을 줄 알았는데 그런게 없어서 아쉬웠다.
이제 부른 배를 어루만지며 벨렝탑 투어. 30분 넘는 뙤약볕 줄서기에 내부에서도 계속되는 줄서기... 휴 줄지옥의 날이다. 벨렝탑은 테주강으로 공격 들어오는 적을 감시할 목적이었다가 나중에 정치범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던 기구한 운명의 탑이다. 상부로 올라갈때 1인 일방통행만 가능한 좁은 나선형 계단을 보고 긴 줄과 인원 컨트롤이 이해가 되었다.
이제 포르투갈 대항해 시대를 연 영웅들의 거대한 조각들이 부조되어 있는 발견기념비로 향한다. 다시 땡빛이다. 태양을 피하고 싶어서 중간에 Warf의 화장실 들렀다가 그 앞 테미블에서 챙겨온 부식인 사과를 먹었다. 발견기념비는 여행서에서 사진으로 본 스케일과 비교도 안되게 거대하다. 인증샷 열심히 박는데 아내가 햇빛 차단용 최애 손수건을 잃어 버렸다고 볼멘소리다. 귀국 몇일 전에는 아내가 바자회때 구입한 모자까지 잃어버리게 된다. 아내는 리스본으로부터 받기보다는 주기를 원하는 천사다.
잘 잃어버리지만 맛집이나 Tourist Attraction에 대한 촉이 발달한 아내의 추천 여행지는 벨렝지구의 "마차박물관"이었는데 여기가 대박이다. 별 기대 없이 우연히 들른 곳인데, 관람객으로 혼잡하지 않고, 여유있게 꼼꼼하게 실물 마차를 구경할 수 있었다. 18~19세기 문학에 나오는 마차가 실제 어떻게 생겼는지 볼수 있어서 좋았고, 당시 부유층이나 왕족들의 롤스로이스나 마이바흐가 어땠는지 그 시대로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간 기분이었다. 현재로 치면 고급시트, 각종 고급 옵션 사양들에 해당하는 것이 마차 외부를 장식한 나무 조각인데... 정말 그 섬세하고 화려하면서도 웅장함에 입이 떡 벌어졌다.
해가 서편으로 뉘엿뉘엿 떨어질 무렵, 728번 버스타고 Cais do Sodre역까지 이동, 다시 메트로타고 호시우광장 도착.
어제 갔었던 식당 El Rei Dom Frango에서 뽈뽀 (문어구이)와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스테이크는 좀 질긴 것이 흠이었다. 이 식당은 오후 7시에 오픈인 줄 알았는데 5시에도 영업을 한다. 하루 종일 줄지옥에서 고통 받았는 우리는 줄 안서고 바로 입장 가능해서 좋았다.
저녁식사후 5대째 이어져오는 체리주 파는 전설같은 가게, 피게이라 광장의 아진쟈에서 1.5 유로 주고 체리주 드링킹 & 인증샷... 약간 알딸딸한 상황에서 그 옆의 상도밍고 성당에 들어가 결혼식을 감상했다. 아내는 하루종일 뙤약볕에 거슬린 피부를 더이상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헤우스타우도스 광장 옆 Mango에서 긴팔 셔츠를 구입했다.
아... 오늘도 강행군이었다. 내일은 리스본의 상징 노란색 28번 트램을 타고 시점 부터 종점까지 이동해 볼 생각이다.
벨렝탑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부부에 의하면 28번 트램 타는데 2시간 40분을 기다렸다고 한다. 졸립더라도 일찍 기상해서 첫 트램을 타기로 아내와 약속했다.
To be Continued~~